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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프로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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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법정의 재판 과정과 소피스트들의 역할 아테네 민주주의는 노예와 부인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 중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에서는 현대의 어느 제도보다도 민주주의적이었다. 재판관들이나 대부분의 행정관리들이 투표에 의하여 선정되었고, 또 그들의 임기도 짧았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오늘날의 배심원과 같은 일반시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시민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직업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보통 다수의 재판관이 소송과 변명을 청취하여 투표에 의해 심리하였다. 원고와 변명자, 또는 고발자와 피고는 개인적으로 출두하였다. 직업적 변호사를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대중적 편견에 호소하는 웅변가에 달려있었다. 원고나 피고는 다 자기 자신의 연설을 해야 했지만, 연설 원고는 전문가들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
소피스트의 거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체계는 5세기 하반기에 들어가 회의주의 운동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회의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소피스트의 거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 '소피스트Sophist'란 이름은 본래 나쁜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략 오늘날의 '교수敎授'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뜻을 가졌었다. 소피스트는 청년들에게 실제생활에 유용한 것들을 가르쳤다. 그 시대에는 아직 공적인 교육기관이 없었으므로, 소피스트들은 개인적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 또는 그 부모가 자격을 갖춘 사람만을 가르쳤다. 이로부터 소피스트들은 자연히 어떤 계급적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시대의 정치적 환경이 더욱 그러하게 만들었다. 아테네에서나 다른 여러 도시에서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