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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그리스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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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 신앙의 운영 특성 버넷은 또 오르페우스 신앙과 그 당시 인도India에 퍼졌던 신앙과는 뚜렷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어떤 접촉도 있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에 그는 '오르기아orgy'라는 낱말의 본래의 뜻에 대해 언급한다. 이 낱말은 본래 오르페우스 숭배자들이 '성체聖體sacrament'의 의미로서 사용해던 것이다. 그리하여 숭배자의 영혼을 정화시켜서 출생의 윤회에서 떠날 수 있도록 만든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오르페우스 숭배자들은 올림포스 종교의 사제들과는 달리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창설하였다. 즉 종교 단체를 만들고, 거기에는 비전秘傳을 받은 자는 누구나 종족이나 성의 구별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의 영향하에서 철학을 생의 양식樣式으로 보는 견해가 일어나게 되..
오르페우스의 결사結社 창설과 공동체 조직 이 새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웠으나 또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의 기원과 같이 옛 것이었다. 오르페우스 결사結社들의 창설과 더불어 최고조에 달하였다. 우리가 아는 한, 이 결사들의 근원지는 아티카Attika였다. 그러나 대단히 급속도로 퍼져 나가, 특히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에 두루 퍼졌다. 이것들은 처음에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기 위한 연합체였다. 그러나 두 가지 특질 때문에 이것들은 구별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요소들이었다. 이들은 먼저 종교적 권위의 근거를 계시에 두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위적인 공동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그 신학을 담고 있는 시詩들은 모두 트라키아 사람인 오르페우스에게 돌렸다. 그리고 오르페우스는 몸소 '황천黃泉'에 내려갔었다고 한다. 따라서, 몸..
그리스 종교가 동방의 종교에 도달하지 않은 이유 그리스 종교는 이 때 바로 '동방東方'의 종교가 도달한 단계에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경향을 저지할 수 있었을는지 알 수 없다. 그리스 사람들의 종교가 '동방적'인 형식의 종교로 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사제의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보통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제들은 교의敎義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다만, 일단 만들어진 교의를 보존할 따름이다. 그리고 동방 사람들도 그 발전단계의 초기에는 사제제도를 가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을 동방식 종교에서 구한 것은 사제제도의 결핍 때문도 아니며, 학원學園들이 존재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리스 사상에 끼친 각 종교의 영향 그리스 사상에 끼친 종교의 영향은, 더욱이 올림포스 종교 이외의 종교가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충분하게 인식되지 못하였다. 제인 해리슨Jane Harrison의 혁명적인 책인 『그리스 종교 연구 서설Prolegomena to the Study of Greek Religion』에서는, 보통 그리스 사람의 종교 속에는 다 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콘퍼드F.M.Cornford는 그의 『종교에서 철학으로From Religion to Philosophy』에서 그리스 철학 연구가들에게 철학자들에 대한 종교의 영향에 관하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전적으로 용납될 만하지는 못하고,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의 인류학도 같은 평을할 수가 있다. 내가 아는 바로..
그리스 사람들의 교육적 요소들 우리는 교육받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인지는 다소나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하는 점에 이를 때는 거의 알 수 없다. 그 때의 어머니들은 남자가 즐기던 문명에서는 전연 제외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양있는 아테네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표면상의 의식적 심리과정이 아무리 합리주의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전통이나 어릴 때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다 원시적인 사고법이나 감정들을 언제나 남기고 있었다. 긴박할 때는 언제나 이런 요소들이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 사람의 견해에 대해 단순한 분석만 가지고는 언제나 불충분한 결과가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오르페우스 종교에 관한 견해 벨로크Beloch는 「그리스 역사」에서 오르페우스 종교에 관하여 설명한 후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그러나 그리스 민족은 너무나 젊은 활력으로 충만하였고, 이 세계를 부인하고 실재의 생을 피안彼岸에 두는 한 가지 신앙만을 무조건 받아 들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오르페우스 종교는 비교적 좁은 범위의 입교자入敎者들 사이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테네와 같이 신비종교의 의식을 국가제전에까지 도입하여 법적 보호 밑에 두게까지 된 사회에서조차 국가종교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이런 이념들이- 완전히 다른 신학의 옷을 입고 나타나 그리스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기까지 완전히 천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지나친 견해인 것 같다. 특히, 엘레우시스 신비종교에 관해서는 더욱..
그리스 사람들의 양면적 특질 그리스 사람 일반의 특질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상의 설명만 가지고서는 역시 그리스 사람의 특질을 '침참성'에 두려는 견해와 마찬가지로 일면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그리스에는 두 가지 경향이 다 내포되어 있다. 한편에는 정열적이요, 신비적이요, 내세적인 경향을, 또 한편으로는 명랑하고 경험적이요, 합리적이요, 또 잡다한 사실을 알기를 즐거워하였다. 헤로도토스는 이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 또, 초기의 이오니아의 철학자들도 그러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어느 정도까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의 성향 - 감정과 지성의 결합 그리스 사람들은 전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부분이 정열적이었고, 불행했으며, 스스로의 내부에 갈등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한편으로 지성에 이끌려 한 길을 달리려고 할 때, 또 한편으로는 감정에 이끌리는 또 다른 길을 달리게 된다. 하늘까지 생각하는 상상과 지옥을 만들어 내는 방자한 자기주장과의 갈등, 이런 내부적 갈등을 그리스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격언은 '아무 일에도 지나치지 않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모든 일에서 과격하였다. 순수 사상에 있어서, 시에 있어서, 종교에 있어서, 그리고 죄에 있어서, 어느 점에서도 그들은 과도했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감정과 지성의 결합이었다. 이 두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만 가지고서도 세계를 그들이 변형하여 버린 것처럼 변형하지는 못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