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리와 사상/서양 윤리사상

(69)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신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신학의 출발점이자,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강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다섯 가지 방식으로 논증하였다. 세계 변화의 운동은 최초의 운동자를 필요로 한다. 즉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최초의 원인이 신이다. 세상은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필연적인 존재가 신이다.무엇을 평가하려면 완벽한 기준이 필요하다. 가장 완벽한 존재가 신이다. 세상은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이 목적을 결정한 최초의 존재가 신이다. - 박해용, “청소년을 위한 서양 철학사” -
아퀴나스의 윤리 사상 - 스콜라 철학 중세 후기에는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 자연과 인간을 조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스콜라 철학이 등장하였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아퀴나스이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처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여 신학 사상을 전개하였으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종교적 차원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모든 존재가 추구하는 덕은 도덕적 덕이며, 행복은 일시적 행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여기에 만족할 수 없고, 이를 넘어서 종교적 덕과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완전한 해복은 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 사상 그리스도교가 좀 더 발전한 모습을 갖추려면 통일된 교리와 이론이 필요하였다. 그리스도교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들의 노력으로 확립되었다. 교부 시대는 철학과 그리스도교가 만나 여러 종교적 학설이 탄생한 시기이다. 교부들은 그리스의 철학, 특히 플라톤의 철학을 받아들여 신앙을 체계화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신앙이 철학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로 철학을 이용한 것이다. 교부 시대는 그리스도교의 통일된 교리를 확립하기 위한 긴 여정이었던 셈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로마 가톨릭이 성립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에 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점차 플라톤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신의 끝없는 사랑과 은총이었다. 따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 - 서양 문화의 형성 우리는 서양 문화의 특징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천여 년에 걸친 중세에는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사상이 결합하여 지배적인 정신 문화를 형성하였다. 예를 들어 대학, 의회, 영국법 등의 기원은 모두 중세에 비롯되었다. 근대 문명의 뿌리가 되는 중세의 사상과 문화는 신앙과 이성, 자유와 권위, 전통의 보존과 미래를 향한 의욕이 조화를 모색하던 것이었다. 고대 철학의 관심이 자연과 우주의 질서와 나의 관계에 있었다면, 중세 철학에서는 신과 나의 관계가 핵심이었다. 중세 철학의 관심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서 ‘나’를 있게 한 존재의 근원을 찾는 데 있었다. 기원 후 1세기 예수에 의해 창시되고 바울Paul에 의해 로마 제국 전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그..
서구 사상과 문화의 성립 서구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리스적 세계관인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인 ‘헤브라이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서양 문화의 두 뿌리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신의 개념을 논증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황금률黃金律golden rule은 도덕률의 궁극 가르침 황금률은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원래 산상 수훈山上垂訓 속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또한, 황금처럼 고귀한 윤리의 지침을 일컫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윤리 사상가가 그들의 도덕규범을 황금률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마라.[己所不慾 勿施於人] - 공자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 칸트
19세기 말, 우리 눈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교가 동양에 본격적으로 전래한 때는 2백여 년 전이었다. 이른바 ‘서학西學’이라고 불린 서양의 종교와 자연 과학 사상이 정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유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지배층은 그리스도교에 반대하여 교리에 대한 비판은 물론 물리적인 금지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리스도교는 우리 땅에 수용되었다. 이때 우리 눈에 비친 예수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서양 선교사들은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교 활동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동양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그리스도교를 이해시키고자 하였다. 영국의 우화 작가 존 버니언Bunyan, J.(1628~1688)이 쓴 종교 우화 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은 우리 조상에게 거부감 없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
예수 사후 체계화된 그리스도교 예수의 죽음 이후 그의 복음은 소수의 유대 인 집단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민족 종교의 범위를 넘어서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사도 바울Paul(5~67)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로마의 동쪽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은 이후 이상 사회를 추구하는 여러 사회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공동체 건설을 생각했던 많은 사람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본보기로 삼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이처럼 수많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새로운 종교의 모습을 갖추고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조직은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