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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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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제국에 예속되지 않는 철학자들의 야심 헤라클레이토스가 가르친 바와 같은 항구적 유전의 사상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과학도 이를 반박할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철학자들의 주요 야심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 죽여 버렸던 것 같은 희망을 소생시키는 일이었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time의 제국에 예속하지 않는 어떤 것을 찾아 왔던 것이다. 이 탐구는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시작된다.
천문학에서 항존적인 천체를 인정하지 않음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문제를 돌리 때, 천문학도 이미 이제는 항존적인 천체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행성들은 태양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또 태양은 성운星雲nebula으로부터 나왔다. 태양은 이미 얼마 동안 존속하였고, 또 앞으로도 더 길게 존속할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에, 아마도 약 1조 년을 지내는 동안에는 폭발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성들도 파괴되어 버려 널리 확산된 기체로 환원될 것이다. 적어도 천문학자들은 그와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 날이 가까워졌을 때, 그들은 그들의 계산에서 어떤 틀린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좀더 작은 단위들의 발명 아무 주저함이 없이 물리학자들은 새롭고 좀더 작은 단위들, 즉 전자electron와 양자陽子proton라고 불리는 것을 발명했다. 원자는 이것들로부터 구성되고 있다고 하였다. 몇 해 동안 이 단위들은 파괴되지 않으며, 전에 원자가 가지고 있던 성질을 구비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양자나 전자들도 서로 충돌하여 폭발한다고 생각되었다. 이 때는 어떤 새로운 물질을 내는 것이 아니고, 광속도光速度를 가지고 우주를 통해 퍼져 나가는 파동을 남길 뿐이다. 에너지가 항존하는 것으로서 물질을 대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에너지는 물질과는 다르고, 성식으로 말하는 사물이란 개념의 세련된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물리현상의 한 성질에 불과하다. 이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불과 동일한 것이라고 상..
과학에서 유전의 사상을 피하기 위한 노력 과학도 철학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유전의 사상에서 피하기 위하여, 변화하는 현상 속에 어떤 항존하는 근본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화학은 이 욕망을 채워 주는 것 같다. 불이란 것은 파괴하고, 다만 변화시킬 뿐임이 발견되었다. 즉, 원소들이 재결합되었을 뿐이며, 연소되기 전에 존재했던 각 원자는 이 연소 현상이 완료된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原子atom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리고 물리계에 있어서의 모든 변화는 다만 존속하는 원소들의 재배열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이런 견해는 방사능이 발견되기까지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방사능이 발견되자 원자들도 분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항구성 헤라클레이토스 자신도 변화에 대한 그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인 어떤 것을 인정하였다. 끝없는 지속과는 반대되는 영원성의 개념은 파르메네데스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은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도 그의 철학의 중심인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은 것이다. 세계는 "과거·현재 미래를 통하여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다." 그러나 불은 계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항구성은 한 실체의 항구성이라기보다 과거의 항구성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돌릴 수는 없다.
영원에 대한 개념과 철학적 체계 시간 속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이나 다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던 철학적 경향을 띤 신비가들은 모두 영원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영원은 끝없는 시간을 통하여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미에서의 영원의 개념이 아니며, 전연 시간적 과정 밖에 있다는 의미에서의 영원의 개념을 생각한 것이다. 어떤 신학자들에 의하면, 예컨대 잉Inge 사제장 같은 이에 의하면, 영생은 미래의 시간 전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서부터 전적으로 독립된 어떤 존재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으며, 또 변화라는 것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본Vaughan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표현하고 있다. 나는 어느 날 밤 영원을 보았다.순결하..
시인들은 시간의 힘을 애통하게 여김 시인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것들을 여지없이 휩쓸어 사라지게 하는 시간의 힘을 애통하여 왔던 것이다. 청춘에 수놓은 장식을 위협하며미인의 이마에 주름살을 깊이 새기는 시간은자연의 진리의 희귀함을 양식糧食으로 하나니,머물러 서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추수의 낫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또, 이들은 모두 그들의 시는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을 것을 부언한다. 그러나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나의 구절은 희망을 품고 서 있나니,그 손이 잔인함에도 불구하고그대의 가치를 찬양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전통적인 문화적 환상에 불과하다.
항구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 나는 이제, 다시 돌아가서 이 사상을 플라톤과 관련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이 사상을 반박하는 데 플라톤이 많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이 문제에 관련하여 어떤 철학이 세워지는가 하는 것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 시인이 무엇을 느꼈으며, 또 이 과학자가 무엇을 가르쳤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려는 것뿐이다. 항구적인 것을 찾는 것은 가장 깊은 인간 본능 가운데 하나이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철학으로 이끌려 간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안주지安住地에 대한 동경,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큰 변동에 가장 심하게 직면하게 될 때 이 본능도 가장 강하게 되는 것을 본다. 종교는 두 가지 형식으로 이 영속성을 찾는다. 신과 영혼의 불멸이다. 신에 있어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