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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민주주의는 노예와 부인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 중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에서는 현대의 어느 제도보다도 민주주의적이었다. 재판관들이나 대부분의 행정관리들이 투표에 의하여 선정되었고, 또 그들의 임기도 짧았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오늘날의 배심원과 같은 일반시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시민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직업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보통 다수의 재판관이 소송과 변명을 청취하여 투표에 의해 심리하였다.
원고와 변명자, 또는 고발자와 피고는 개인적으로 출두하였다. 직업적 변호사를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대중적 편견에 호소하는 웅변가에 달려있었다. 원고나 피고는 다 자기 자신의 연설을 해야 했지만, 연설 원고는 전문가들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또, 법정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대가를 지불하며 배웠다. 이런 기술을 가르친 것이 소피스트들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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