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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그리스 문명48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의 종교의식에서 발달 오르페우스 종교가 영향을 끼친 곳에는 어디나 바쿠스적 요소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 바쿠스적 요소 중의 하나는 여성주의feminism이다. 피타고라스에는 이 요소가 많다. 또, 플라톤에 있어서도 여성에 대한 정치적 절대동등권을 주장하기에 이르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말하기를, "성적性的인 면에서는 여성들이 더 경건敬虔에 가깝다. 바쿠스적 요소 가운데 또 하나는 격렬한 정서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의 종교의식에서 발달되었다. 특히, 에우리피데스는 오르페우스 종교의 두 주요 신을 소중히 여겼다. 즉, 바쿠스와 에로스Eros이다. 그는 냉정하고도 독선적이며, 탁월한 행위의 인물을 존경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그의 비극에서는 미쳐 버리고 말든가, 또는 그의 신성모독에 대해 신들로부터 노여.. 2016. 2. 10.
오르페우스 종교의 피타고라스 영혼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샘물은 레테Lethe 샘물이다. 이 물은 망각을 일으킨다. 또 다른 한 샘은 므네모슈네Mnemosyne이다. 이것은 기억의 샘물이다. 내세에 영혼이 구원을 성취하려면 망각해서는 안되며, 반대로 자연을 초월하는 기억을 가져야 한다. 오르페우스 종교는 금욕적인 종교였다. 술은 그들에게 유일한 종교적 상징symbol이었고, 이것은 후에 기독교의 성찬聖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구한 바 도취는 '광신狂信'의 도취였고, 신과의 합일에서 맛보는 도취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보통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신비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신비적 요소는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그리스 철학에 들어왔다. 오르페우스가 바쿠스 종교의 개혁가였던 것같이 피타고라스는 오르페우스 종교의 개혁.. 2016. 2. 4.
오르페우스 종교의 페텔리아 석판에 적힌 글들 오르페우스 종교의 석판石板들이 무덤 속에서 발견되었다. 거기에 보면,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저 세상에 가는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자기가 구원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이 파괴된 것뿐인데, 그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 페텔리아 석판the Petelia tablet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황천의 집' 왼편에 한 샘물이 있고, 그 곁에 흰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것을 보거든이 샘물에 가까이 가지 마라.'기억의 호숫가'에 또 다른 한 샘물을 보리니찬물은 흘러나오며, 파수꾼이 이를 지키고 있으리라.그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는 '땅'과 '별하늘'의 아들이외다.그러나 나는 그대도 아는 바 '하늘'의 종속이외다.. 2016. 1. 29.
에우리피데스의 교훈적인 고백 에우리피데스는 오르페우스 사제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교훈적인 고백을 하게 한다. 에우로파의 티레Tyrian 혈통의 군주제우스의 소생, 그대의 발밑에크레타의 수많은 성채城砦를 지배하다컴컴한 사당 속으로부터 그대를 찾으니 활력 있게 아로새긴 들보와칼리브Chalyb의 강철과 들황소의 피로 지붕 삼고,사이프러스 나무의 틈 없는 매듭으로 굳건히 선 사당 속으로부터 그대를 찾으니 거기, 정결한 흐름 속에 나의 날들이 흘러가다.그대의 종, 이다산의 주피터Idaean Jove의 입교자入敎者,나는 심야에 자그레우스Zagreus 방황하는 곳에, 방황하다.그의 우뢰 같은 부르짖음 소리를 감당하다. 그의 붉은 피의 제전祭典으로 충만하여,대자연의 품, 불꽃에 둘러 싸여,바쿠스 사제의 이름으로 이름 불리며,나는 자유를 누린다. .. 2016.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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