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엥겔스3

사회주의 사상가·경제학자, 마르크스 독일 출신의 마르크스Marx, K.(1818~1883)는 “공산당 선언”, “자본론”을 통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런던에서 개최된 ‘공산주의자 동맹’ 제2차 대회에 참가해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1848)”을 발표하여 각국의 혁명에 불을 지폈다. 그는 강력한 문장과 선동적인 문체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지만, 현재까지 그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한 사회나 국가는 없다. 2016. 9. 25.
마르크스, 뛰어난 사상에 앞선 경제적 불행 마르크스는 뛰어난 사상가였지만, 그의 생활은 비참하였다. 그는 기득권층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국외로 추방되어 결국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이상적인 동지이자 공동 작업자였던 엥겔스의 도움을 받았으나, 런던의 다락방에 살면서 빚쟁이들의 독촉이 심해지면 숨어 지내고 때로는 옷을 전당포에 맡길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그는 런던에서 두 아들과 딸등 세 명의 자식을 잃었으며, 딸이 죽었을 때는 관을 마련할 돈조차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관을 마련했다고 한다. 2016. 3. 18.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 토마스 모어와 마르크스·엥겔스 사회주의 사상으로는 사유 재산권의 폐해를 지적하고 공동체 생활을 추구한 공상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엥겔스의 사회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산업 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것을 유토피아의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사회의 원리를 구상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들의 구상을 구체적인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공상적 수준에 머물렀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렸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하였으며, 엥겔스와 함께 1847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 투쟁으로 자본주의는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 계급 없는.. 2016. 3.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