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민주주의5

소크라테스가 정치가가 되기를 꺼린 이유 소크라테스는 왜 사사롭게만 돌아다니고, 공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가? “제군은 내가 때때로, 그리고 여러 곳에서, 나에게 임하는 신탁 또는 표적表迹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멜레투스가 그의 고발에서 비웃는 신이다. 이 표적은 일종의 음성이며,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에게 임하기 시작하였다. 이 음성은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항상 하지 못하게 하며, 어떤 일을 명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정치가가 되기를 꺼린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계속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직한 사람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자기가 불가피하게 정치에 묻혀 들어갔던 예를 두 가지 든다. 첫째는 그가 민주주의에 반대한 일이고, 둘째는, 30인의 참주정치에 반대한 일이다. 두 경우가 다 당국자들.. 2016. 9. 24.
‘자유’와 ‘평등’ 구현의 가장 이상적인 사회, 민주주의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자유’와 ‘평등’이 함께 충족되고 유지되는 상태이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은 동등한 가치를 지녔지만, 인간의 행복 추구의 실천적 순서로서는 ‘자유’가 ‘평등’ 앞에 있다.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평등으로만 가능하지만, 개개인에게 가치 있는 것은 자유가 먼저이고 다음이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하는 제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민주주의일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원리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역사에서 자유는 한 사람에서 소수로, 다시 만인의 자유로, 만인이 똑같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평등으로 진보해 왔다. 즉, 자유의 신장은 평등의 확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 2016. 8. 17.
민본주의와 민주주의 - 청계천 정비를 중심으로 조선 태종 때 도시의 하수도 구실을 하던 청계천에 쓰레기와 토사가 점차 쌓이자 이를 정비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이후 세종은 청계천 지류를 정비하는 공사를 시작하는데, 당시 심각한 국책 사업 논쟁이 벌어졌다. 풍수지리학자들은 "명당수인 청계천을 깨끗이 정비해야 국운이 돌아온다."라는 논리를 폈고, 집현전 학자들은 "하천 주변 백성의 민생을 해칠 것이며, 풍수지리에 따라 국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라며 반대의 논리를 폈다. 당시 논쟁은 집현전 학자들의 우세승으로 돌아갔고, 이후 300년 동안 사람이 지배하면서 청계천 정비 사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후 300년 만인 영조에 이르러 청계천 정비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영조는 청계천 공사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준천사실濬川事實"이라는 기록을 남.. 2015. 10. 20.
자연법적 계약 사상과 민주주의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상이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떠한 배경에서 탄생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가치를 추구해 왔는가? 민주주의란 말은 그리스 어로, '민중'을 뜻하는 'demos'와 '지배'를 뜻하는 'kratos'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제도라고 경험적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치 사상이라고 규범적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아테네였다. 여기서는 20세 이상의 남자 시민으로 구성된 민회가 중요한 사항을 직접 토론하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2015. 8. 2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