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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논의에 대하여 지금 응하려고 하지않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인 기억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논의를 여기에 넣은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철학의 학설은 그것이 중요한 것인 경우에는, 본래 진술되었던 것이 논박되고 난 후에 어떤 새로운 형체를 가지고 다시 등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논박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에 논박은 다만 더 세련된 논의로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파르메니데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이 파르메니데스로부터 배운 것은 모든 변화의 불가능성은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과격한 역설이었다. 그의 이후 철학자들이 그로부터 배운 것은 실체substance의 불명성이었다. '실체'란 말은 그의 직접 후계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개념은 벌써 그들의 사색 가운데 나타나 있다. 실체란 변하는 술어predicate들에 대하여 존속하는 주어subject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것으로서 '실체'는 2000년 이상이나 철학·심리학·물리학·신학의 기본적 개념의 하나로서 존속하여 왔다. 이것에 관하여 후에 더 많이 언급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다만 파르메니데스의 논의를 현저한 사실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다루려 할 때, 이 실체의 개념이 도입되게 된다는 것만 주의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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