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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 때 도시의 하수도 구실을 하던 청계천에 쓰레기와 토사가 점차 쌓이자 이를 정비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이후 세종은 청계천 지류를 정비하는 공사를 시작하는데, 당시 심각한 국책 사업 논쟁이 벌어졌다. 풍수지리학자들은 "명당수인 청계천을 깨끗이 정비해야 국운이 돌아온다."라는 논리를 폈고, 집현전 학자들은 "하천 주변 백성의 민생을 해칠 것이며, 풍수지리에 따라 국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라며 반대의 논리를 폈다. 당시 논쟁은 집현전 학자들의 우세승으로 돌아갔고, 이후 300년 동안 사람이 지배하면서 청계천 정비 사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후 300년 만인 영조에 이르러 청계천 정비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영조는 청계천 공사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준천사실濬川事實"이라는 기록을 남기도록 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영조는 공사 결정 전에 8년 동안 하천 주변 백성의 민생을 두루 고려하고 지역 대표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공사의 타당성을 따지고 나서 20만 명을 참여시켜 공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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