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스파르타2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 그리스는 다수의 작은 국가로 분할되어 있었다. 각 국가는 1개 도시와 도시 주변의 농토로써 이루어져 있었다. 문명의 정도도 그리스 세계의 부분에 따라 차이가 대단히 컸다. 그리고 다만 소수의 도시들만이 그리스 문명에 기여할 수가 있었다. 스파르타는 군사적 의미에서는 중요성을 가지나 문화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여러 가지로 언급하겠다. 코린트는 부유하고 번영된 큰 상업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이 그다지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또 유명한 아르카디아Arcadia와 같이 순전히 목가적인 촌락사회도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런 사회에 대하여 전원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옛날의 야만적인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2015. 10. 7. 기원전 5세기 아테네가 주동하는 그리스 반도 기원전 5세기 동안에 - 소피스트들이 이 변화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든지 간에 - 아테네에서는 엄격한 청교도적 순진성으로부터 기지에 빠른 잔인한 냉소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기지는 빨리 돌지 않으나 마찬가지로 잔인한 파괴적 정통주의의 경향도 없지는 않았다. 이 세기 초에 페르시아에 대한 이오니아 여러 도시의 투사 아테네가 등장하게 되며, 기원전 490년 마라톤Marathon의 승리를 얻게 된다. 이 세기 말, 기원전 404년에는 스파르타에게 아테네가 패배하고 기원전 399년에는 소크라테스의 박해가 일어난다. 이후 아테네는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잃게 된다. 그러나 문화적 우위는 논의의 여기가 없었고 기독교의승리까지 존속되었던 것이다. 2015. 8. 1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