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께서 나랏일을 잘못 다스린 지 이미 오래되어,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났으며, 백성들의 마음 또한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가 백 년 동안이나 벌레에게 그 속을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과 같아,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입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가운데 충성되고 뜻있는 신하와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공부하는 선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나라의 형세가 극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 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낮은 벼슬아치는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술 마시고 즐기는 일에 정신이 없습니다. 높은 벼슬아치들도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오직 백성의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 정신이 팔려, 물고기의 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오라 조정의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왕권을 농락하고, 외신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 떼처럼 날뛰면서도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다는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臣은 깊은 시름에 탄식만 길게 나올 뿐이며,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 수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이면 잠 못 이룬 지가 오래입니다. ······
이런 나라 형편을 바로잡는 길은 여러 가지 법령에 있지 않고, 오직 전하께서 한 번 크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진실로 전하께서는 하룻밤 사이에 깜짝 놀라 새사람이 되듯 깨달으십시오. 지금부터라도 학문에 힘써 덕을 밝히시고, 백성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게 하십시오. 착함과 덕을 펴는 정치를 하면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지고, 흩어진 민심이 다시 전하 곁으로 돌아오고, 위기를 평안하게 할 수있늘 것입니다.
- 조식曹植, '을묘사직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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