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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런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개인적인 답변 또한 줄 수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적다는 것에 관해서는 알려 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망각할 때,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여러 가지 것에 대해서 오히려 무감각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 신학은 사실상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에까지도 우리가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독단적인 신앙을 도입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일종의 무례한 불손함을 낳게 된다. 생생한 희망과 공포가 있는 불확실성이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의지하여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이 문제 삼고 있는 문제를 망각하는 일도 좋지 못한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해결점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일도 좋지 못한 일이다. 확실성이 없이도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망설임으로 무력하게 되는 일이 없이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바로 이런 것을 가르치는 일이 바로 우리 시대에서 철학이 그 철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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