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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아테네의 문화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철학에 있어서, 아테네는 다만 두 명의 위대한 인물을 남겼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약간 뒤에 온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의 청년 시대와 초기 장년 시대를 페리클레스 치하에서에서 지냈다. 아테네 사람들은 철학에 대한 관심이 컸었고, 다른 도시들로부터 온 스승들에게 열심으로 귀를 기울였다. 토론하는 기술을 배우려는 청년들은 소피스트들을 찾아 다녔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에 보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저명한 외래인들의 말words에 매달리는, 열성적인 제자들에 관하여 흥미 있는 풍자를 하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우리가 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아낙사고라스를 데려왔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서 창조에 있어 정신의 우위를 배웠다고 하였다. 


플라톤의 대화의 대부분이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행해진 것으로 가상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 보면 부호들 간의 생활에 관하여 서로 일치하는 묘사를 하고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 귀족 가문에 속하였고, 전쟁과 민주주의가 상류계급의 부와 안전을 깨뜨리기 전에 전통 속에서 자라났다. 그의 청년 시대에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고, 한가한 시간을 대부분 과학과 수학, 철학을 공부하는 데 소비했다. 그들은 호머를 거의 암송하였고, 직접적 호머 낭송가들의 특기를 비판할 줄 알았다. 연역적 추리법이 최근에 발견되었고, 이것은 지식의 전 영역에 대하여 참된 혹은 거짓된 새로운 학설들을 일으켰다. 이 시대에는 지적으로 되는 것과 행복이 병행할 수 있었다. 지성을 통하여 행복하게 될 수 있던 시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황금 시대를 이룬 힘의 균형은 불안정한 것이었다. 이 균형은 안·밖으로부터 위험이 따랐다. 안으로는 민주주의에 의하여 위험이 있었고, 밖으로는 스파르타로부터 위험이 있었다. 페리클레스 이후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티카의 초기 역사를 간단히 고찰하여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