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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들어가기 전에

중세 철학의 거울

by 앞으로가 2015.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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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교회로부터 독립하려는 튜턴족의 노력은 다만 정치 분야에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또 예술·소설·기사도騎士道·전쟁 등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지적 세계에서는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은 교육이 전적으로 교직자들에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표면에 나타난 중세의 철학은 그 시대의 정확한 거울이 아니었다. 다만, 어느 한 부분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나타낼 뿐이다. 그러나 성직자들 사이에도 특히 프란체스코 교단의 수도사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교황과 불화한 사람들이 많았다. 더욱이 이탈리아에서는 문화가 알프스 북방보다 수세기 앞서고 있었으므로 속인들에게 까지 보급되었다. 새로운 종교를 발견하려고 노력한 프리드리히 2세는 반교황문화의 극단적인 대표자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가 지상권至上權을 가지고 있던 나폴리 왕국에서 태어난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철학의 고전적 대표자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약 50년 후에 가서야 단테가 그 종합을 성취했다. 그리하여 중세 사상계 전체에 걸쳐 유일하게 균형 있는 해명을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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