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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철학적 종합은 단테 이후에 정치적, 지적 이유로 파괴되었다. 이 종합적 체계가 존속했을 때도 그것은 소규모의 정돈된 완전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 체계 속에서 고려되던 것도 매우 한정된 범위의 르네상스 교황 제도의 큰 알력을 마침내 종교 개혁을 야기시키게 되었다. 이로써 교황 중심의 기독교의 통일성은 파괴되었고, 또 스콜라 철학적 정부론도 파괴되고 말았다.
르네상스 시기에 일어난 고대와 지구 표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기존 사상 체계들에 대해서 권태를 일으켰고, 그래서 그것은 단지 정신적 감옥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은 지구와 인간에 대해 프톨레마오스의 학설에서 향락해 오던 지위보다 더 겸손한 지위를 부여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런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제까지와 같이 추리하고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예술 분야의 경우, 르네상스까지는 아직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사상에서는 대한히 복잡하고 난해한 무질서를 일으켰다. 이 점에서 몽테뉴는 이 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대표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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