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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제외하면 다른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정치학설에서도 질서의 붕괴를 보았다. 중세는 비록 그 실천은 거칠었으나 사상은 율법에 대한 열정과 정권에 대한 매우 정확한 학설이 지배하고 있었다. 모든 권력은 궁극적으로는 신으로부터 근원한다. 신이 성스러운 일에 대한 권력은 교황에게 부여했고, 세속의 문제는 황제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15세기에 와서는 교황이나 황제 모두 그들의 중요성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교황은 다만 이탈리아의 군주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도 무법한 권력 정치 놀이에 한몫 끼고 있었다. 프랑스나 스페인, 영국에 새로 등장한 국가주의 군주들은 그들 자신의 영토 내에서는 교황도 황제도 아무 간섭을 할 수 없는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민주국가는 주로 화약에 의존하여 국민의 사상과 감정에 대해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점차적으로 문화의 통일성에 대한 이제까지의 신앙심 가운데 남아 있던 것까지도 파괴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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