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의 시대에 사모스는 폴리크라테스Polycrates라는 폭군이 다스리고 있었다. 폴리크라테스는 본래 한 노숙한 악한이었으며, 거대한 부를 이루었고, 거대한 해군을 가지고 있었다. 사모스는 밀레투스와 상업상의 적수였다. 사모스의 상인들은 멀리 스페인의 타르테수스Tartessus까지 진출했는데, 그곳은 광산으로 유명했다. 폴리크라테스는 기원전 535년경에 사모스의 전제군주가 되었고, 기원전 515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도덕적 양심의 가책을 별로 받지 않고, 그의 폭군정치에 협력하여 오던 두 형제를 제거해 버렸으며, 또 그의 해군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해적 행위를 하였다. 그는 밀레투스가 최근에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한 것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었다.
페르시아가 더 이상 서쪽으로 진출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이집트 왕 아마시스Amasis와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Cambyses가 전력을 다해 이집트를 정복하려는 것을 보자. 폴리크라테스는 캄비세스가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을 깨닫고 곧 그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는 함대를 보내 이집트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함대는 그의 정치적 적수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폴리크라테스를 배반하여 그를 공격하려고 사모스로 함대를 돌린다. 그렇지만 폴리크라테스에게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마침내는 그의 물욕에 호소한 불신행위 앞에 그는 넘어갔다. 사르데스Sardes의 페르시아 총독이 그리스 왕을 배반할 의사를 전해 오고, 그 일에 폴리크라테스가 원조하여 주면 거액의 보수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해 왔을 때, 그는 회견을 하기위해 본토로 갔다가 붙잡혀 십자가형을 받았던 것이다.
폴리크라테스는 예술의 보호자였다. 그는 주목할 만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사모스 섬을 미화하였다. 아나크레온Anacreon은 그의 궁중시인이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그의 정부를 싫어했고, 따라서 사모스를 떠났다. 피타고라스는 이집트를 방문하여 거기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있음직 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든 간에 그가 결국은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토네Crotone에서 입신立身하게 된 것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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