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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가 어떤 일정한 사물이 되는 것은 형상 때문이며, 또 이것이 그 사물의 실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하는 것이 평이한 상식같이 보인다. 즉, 한 ‘사물’은 한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한계가 곧 형상을 이루고 있다.
가령 한 그릇의 물을 생각하여 보자. 물의 어느 부분도 한 그릇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나머지 부분과 구분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한 ‘사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이 어느 부분도 동질적인 다른 부분에서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조각상은 한 ‘사물’이다. 그리고 그 조각상의 재료인 대리석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본래 찍혀 나온 그 큰 덩어리, 즉 돌산의 내용물로 있을 때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자연히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은 형상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자론原子論의 가설假說이 우리의 상상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사물에 있어서 각 원자는 그것이 어떤 ‘사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른 원자들로부터 구분되어 한계를 가져야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형상’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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