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서양 사상 조각273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특징과 한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그 이전의 철학자들과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다. 그는 처음으로 교수敎授와 같이 글을 썼다. 즉, 그의 논설은 조직적이었고, 그의 논의도 제목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직업적인 교사였고, 영감을 받은 예언자자는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비판적이었고, 치밀하고 단조로워 바쿠스적인 정열의 형적形迹을 찾아볼 수가 없다. 플라톤의 오르페우스적 요소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흘러내려왔으나, 상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플라톤적으로 쓴 부분을 볼 때는 그의 선천적 기질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에 압도당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정열적이지도, 또 깊은 의미에서 종교적이지도 못했다. 그의 선인들의 오류는 불가능한 것을 시험해 보는 청춘의 오류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는 습관화된 편.. 2016. 5. 16.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로부터 받은 영향 소크라테스로부터는 윤리 문제의 우월성을 배운 것 같다. 그리고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기계론적mechanical으로 되기보다 목적론적teleological으로 되려는 경향도 그로부터 배우게 된 것 같다. '선善the good'이란 것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어느 철학자들의 사상에서보다도 플라톤의 사상에서 가장 지배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2016. 5. 13.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기술에 대한 평가 플라톤은 한 철학자임과 동시에 대단히 천재적이고 매력적인,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이기도 하였다. 또, '대화편'에 나타나 있는 대화들이 기록된 그대로 행해졌다고는 누구나 생각하지 않으며, 또 플라톤 자신도 그런 듯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초기 '대화편'들에는 그 대화들이 아주 자연스럽고, 인물들도 완전히 수긍되는 바가 있다. 플라톤이 역사가로서 의심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은 바로 소설 작가로서의 그의 탁월성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모순 없고 대단히 흥미 있는 인물이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꾸며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플라톤은 그를 꾸며 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사실로 꾸며 했는지 어떤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2016. 5. 10. 알렉산드의 사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처신 기원전 335년에서부터 323년까지(알렉산드는 이 후년에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가 학원學園을 세우고, 또 그의 책 대부분을 쓴 것은 이 12년 동안의 일이었다. 알렉산드가 죽자 아테네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먼저 알렉산드의 친구들에게 공격해 왔다. 그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신에 대한 불경죄로 고소당하자,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벌을 피해 도망쳤다. 그는 그 다음해인 기원전 322년에 죽었다. 2016. 5. 7.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6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