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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원자론자

목적론적 관점과 기계론적 관점에서의 사고

by 앞으로가 201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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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론자들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과는 달리, 세계를 설명 하는 데 목적, 즉 목적인目的因final cause을 도입하지 않았다. 어떤 사건의 '목적인'이라는 것은 그 사건이 목적으로 하는 미래의 한 사건을 말한다. 즉,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 그 미래에 일어날 목적이 될 사건을 위해 일어난 것이다. 인간에 관련된 여러 일에는 이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가령, 무엇 때문에 빵 굽는 사람은 빵을 만들고 있는가? 사람들이 배고플 것이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철로를 가설하는가? 사람들이 여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의 사물들은 그것이 봉사하는 목적으로 설명된다.


어떤 사건에 관하여 '왜?'라고 물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일을 의미할 수가 있다. 하나는, "이 사건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또는 "어떤 환경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나?"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전자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목적론적 설명teleological explanation이요, 목적인에 의한 설명이다. 후자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기계론적 설명mechanistic explanation이다. 이 두 가지 물음 가운데 어느 것이 과학의 물음인가, 또 양자를 동시에 물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어떻게 미리알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경험은 이 기계론의 문제가 과학적 지식이되고, 목적론적 문제는 과학적 지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원자론자들은 기계적인 문제를 문제 삼았고, 기계론적인 대답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계자들은 '르네상스'까지 목적론적 문제에 더 관심이 있어 했고, 마침내 과학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이 어느 문제에 대해서나 다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일반 사람이나 철학자나 다 때때로 망각하였다. 어느 문제도 신, 또 '전체로서의 실재reality as a whole'에 관하여 합리적으로 문제 삼을 수가 없다. 다만, 실재의 부분들에 관해서만 문제삼을 수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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