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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론적 설명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 이 설명은 얼마 진행되기 전에 곧 창조자 또는 적어도 그의 목적이 이 자연의 발전 과정 속에 나타나게 되는 그 창조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철저하게 목적론적으로 되어서, 그러면 이 창조자는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을 계속 추구할 것 같으면, 이 추구는 분명히 경건치 못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왜냐 하면, 이 질문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는 이 창조자까지도 창조한 어떤 초창조자를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목적의 개념은 다만 실제 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인지 실재 일반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계론적 설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의가 적용된다. 한 사건은 다른 한 사건의 원인이 되어 결과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또 다른 한 사건에 의해 야기된다. 이와 같이 진행하여 계속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전체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문제 삼을 때 우리는 또 다시 창조주에게로 이르게 된다. 창조주 자신은 아무 원인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인과적 설명은 한 자의적이 시초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원자론자들이 그 원자의 첫 운동에 관하여 설명하지 않고 남겨 놓은 것이 결코 그들의 결함이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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