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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 학파에 대한 버넷의 고찰

by 앞으로가 201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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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 학파의 윤리에 관한 버넷의 것을 고찰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설명에 있어서 현대의 가치와 반대되는 야구 시합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 현대 사람들은 선수들이 일개 구경꾼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에 관해서도, 시합에 있어 출전자격인 정치가 단순한 구경꾼보다 더 훌륭하게 볼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의 변화는 사회 제도의 변화와 관련된다. 전사戰士·신사·금권가·독재자, 모두가 다 자기 고유의 선과 진리의 표준을 가지는 것이다. 신사는 철학적 사색에 장기간 관여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들은 그리스의 천재들과 관련되어 있었고, 둘째로 관조觀照의 덕은 신학적 보증을 얻고 있었고, 또 공정 무사한 진리의 이상이 학적學的 생활의 권위를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사란 노예 노동에 의존해서 사는, 또는 적어도 그들의 열등성이 자명했던 사람들의 노동에 의존하여 살고 있던 사람들과 동등한 사회의 일원이었다고 정의할 수가 있다. 성인들이나 현인들도 그들의 생활이 활동적이라기보다 관조적contemplative인 한, 위에 말한 신사의 정의 속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진리에 관한 현대적 정의는, 가령 실용주의나 도구주의道具主義적 측면에서 진리에 관한 정의는 관조적이라기보다 실용적이다. 그리고 귀족주의와는 반대되는 산업주의에 더욱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노예 제도를 용납하는 사회 제도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할 수 있든 간에, 순수 수학에 관해서는 위에서 정의한 바 신사들의 공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관조의 이상은 그것이 순수 수학의 창조를 일으킨 이래로 유용한 활동의 근원이 되어왔다. 이 때문에 관조의 특권이 더욱 확장되었다. 그리고 신학이나 윤리학, 철학에서도 성공하게 만들었다. 만일, 그와 같이 관조가 유용한 활동의 근원이 되어오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신학이나 윤리, 철학에 있어서의 관조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두 가지 측면, 즉 종교적으로서의 면과 순수 수학자로서듸 면에 관한 설명은 이상과 같다. 이 어느 면에서도 그는 한없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면은 그것들이 현대인에게 생각되는 바와 같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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