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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사상/서양 윤리사상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

by 앞으로가 201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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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근거하여 쾌락의 획득과 고통의 회피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에 따르면, 쾌락만이 유일하게 좋고 가치 있는 것이므로, 고통을 멀리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다. 



이러한 쾌락주의는 도시 국가의 붕괴로 말미암아 정체감과 소속감을 상실하였던 당시 그리스 인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되는 정복 전쟁과 가난,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고, 그 결과 삶의 안정을 오직 자신의 정신과 육체라는 개인적 요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다. 에피쿠로스는 가능한 한 개인의 쾌락을 극대화하고, 당장 현실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삶이야말로 미래가 불확실하고 험난한 세상을 견뎌내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방탕함에 빠진 자포자기의 삶이나 식욕, 성욕의 충족과 같은 강력한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감각적 쾌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감각적 쾌락주의는 항상 순간적·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로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여 방탕한 삶을 산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장 즐길 수 있는 쾌락을 얻으려고 도박에 탐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되고, 결국 도박 중독이라는 고통을 겪에 될 것이다. 이처럼 순간적·감각적인 쾌락에 집착하여 그것만을 추구하게 되면, 오히려 쾌락을 얻을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쾌락주의의 역설'이라고 한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쾌락이라는 말을 통해서 의미하는 바는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근심이 없는 상태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쾌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보다 고통과 근심을 제거함으로써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극적 쾌락주의라고 할 수 있다. 또,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즉 고통과 근심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근심의 원인을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따르면, 고통과 근심의 원인은 비자연적이고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데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 명예와 명성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걱정거리를 제거하는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개인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다. 에피쿠로스는 감정적·정신적 동요나 혼란이 없는 평정심의 상태를 '아타락시아[각주:1]'라고 표현하였다.


자연적이며 필수적인 욕구를 최소한으로 충족시키고, 번잡한 세상일에서 벗어나 조용히 개인적인 평안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마치 숨어 살아가는 은둔자의 삶을 연상시킨다. 그에게 정치적·사회적 구성원으로서 공적인 삶은 집착, 좌절, 다툼, 두려움, 분노 등으로 말미암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일으킨다. 따라서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 마치 가정과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 가까운 친구와 더불어 지적인 교류와 토론에 만족하면서 사는 삶이 바람직한 삶이다. 이러한 점에서 에피쿠로스는 우정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였다. 


  1. 아타락시아ataraxia : 혼란스러움, 흔들림, 동요taraxia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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