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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란 후세에 붙인 이름이고 원래는 풍류風流, 또는 풍월도風月道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화랑도 정신의 뿌리이다. 화랑 가운데 대표자를 국선國仙이라 하였는데, 최치원 당시만 하더라도 화랑도의 역사를 적은 "선사"가 있었다. 최초의 국선인 설원랑薛原郞의 비가 명주溟州에 있었으며 후세의 난랑鸞郞의 경우 최치원과 같은 명망 있는 학자가 비문을 쓸 만큼 존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국 통일보다 1세기 전에 화랑도를 중창重創한 진흥왕이 "나라를 중흥시키려면 모름지기 풍월도를 해야 한다." 라고 한 문맥으로 보아, 풍월도가 그럴 만한 의미와 내용이 있는 것이니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봄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
그런데 고유 사상인 '풍류' 속에 삼교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거나 화랑도가 발전하면서 삼교를 흡수·포함하게 되었다거나, 그 어느 주장에 관계없이 삼교를 포함한 '풍류'는 신라에 실존했던 '풍류'요, '현묘지도' 그 이외의 것이 아니다.
- 이동준, "한국 유교 사상사 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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