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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람들은 학설에서나 실천에서 온건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박박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엘레아Elea 태생으로 기원전 5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그의 청년시절에 파르메니데스와 회견했다고 한다. 기원전 450년경이다. 파르메니데스는 그 때 이미 노숙했고, 소크라테스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 회견이 역사적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 자신이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남이탈리아나 시실리 철학자들은 이오니아의 철학자들보다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경향이 많았다.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그 경향이 대체로 과학적이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수학은 피타고라스의 영향으로 이오니아보다 마그나 그라에키아Magna Graecia에서 더욱 발달되었다. 그 시대의 수학은 신비주의와 얽혀 있었다. 파르메니데스는 피타고라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나 그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단정하기 어렵다. 파르메니데스를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논의의 한 형식을 창안했다는 점이다. 이 논의법은 이후 헤겔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형이상학자들에게서 볼 수가 있다. 그는 때때로 논리학을 발견한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발견한 것은 논리에 입각한 형이상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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