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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의 철학적 논리는 철학에서 사유와 언어로부터 세계일반을 논하는 철학의 효시인 것이다. 물론 위의 논의가 바르다고 용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 어떠한 진리의 요소가 깃들어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 논의를 다음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말이 무의미한 말이 아닐진대, 말은 어떤 사물을 의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보통 말들은 다른 말들을 의미해도 안되고, 다만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든 말하고 있지 않든 간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을 의미해야 한다. 가령, 우리가 조지 워싱턴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만일 이런 이름을 가진 어떤 역사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은 무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이름을 포함하는 문장들도 무의미할 것이다. 파르메네데스는 주장하기를 , 조지 워싱턴은 과거에 존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현재까지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하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의 이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참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이 논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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