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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세상/사회와 도덕성

조선 개혁을 다짐하는 정약용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972~1836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경제적으로 피폐해졌고 정치적으로 당쟁을 일삼았으며, 관료의 부패가 심해지면서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다. 다산 정약용은 이런 상황이 더욱 심해진 18세기 후반에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하였고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여러 개혁적 학자들과 접촉한 그는 당시의 조선을 개혁하기 위한 학문인 실학을 연구한 이익李瀷의 저술을 읽고 자신도 이러한 학문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20대 초반에는 당시 조선을 개혁하려는 신진 학자들과 더불어 천주교와 서양 과학 기술을 접하기도 하였다. 이후 관직에 진출해서는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의 조선을 뜯어고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정조는 여러 측면에서 개혁을 진행하였고, 나아가 그 개혁의 총체적 완성으로서 수원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뜻을 품었다. 정약용은 정조가 수원에 편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배다리를 만들고, 화성을 쉽게 축조하기 위하여 거중기를 만들었다. 또한, 경기도 암행어사로서 핍박받는 백성들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