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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세상/도덕과 자율

화를 내는 것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분노와 관련해서도 지나침과 모자람과 중용이 있다. 이것들은 적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인 사람을 온화하다고 부르므로 그 중용을 ‘온화’로 부르기로 하자. 양 끝에 있는 사람들 중 지나친 사람은 ‘성마른 사람(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그 악덕은 ‘성마름’으로 하지.또한, 부족한 사람을 ‘화낼 줄 모르는 사람’, 그 모자람을 ‘화낼 줄 모름’이라고 하자.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일에 대해, 마땅히 화룰 낼 만한 사람에게,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한 때에, 마땅한 시간동안 화를 내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그렇다면 온화가 칭찬을 받는 것인 한, 이런 사람이 온화한 사람인 것이다. 온화한 사람은 동요가 없는 사람이며, 또 감정에 휘들리지 않고 이성이 명령한 것처럼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대상에 대해 화를 낼 시간 동안 노여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방면에서의 모자람은, 그것이 일종의 ‘화낼 줄 모름’이든 다른 무엇이든, 비난을 받는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마땅한 방식으로 화를 낼 줄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낼 줄도 모르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점만큼은 명백하다. 즉, 그 중간의 품성 상태에 따라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사람들에게,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그리고 이와 같은 모든 마땅함을 규정하는 관점에 따라 우리가 화를 내는 상태는 칭찬할 만한 것이다. 또한, 이 방면의 지나침과 모자람은 비난받을 만한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스승인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으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움직이는 원인을 탐구하는 현실주의의 입장을 취하였다. “오르가논”,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등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