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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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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소크라테스 기술에 대한 평가 플라톤은 한 철학자임과 동시에 대단히 천재적이고 매력적인,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이기도 하였다. 또, '대화편'에 나타나 있는 대화들이 기록된 그대로 행해졌다고는 누구나 생각하지 않으며, 또 플라톤 자신도 그런 듯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초기 '대화편'들에는 그 대화들이 아주 자연스럽고, 인물들도 완전히 수긍되는 바가 있다. 플라톤이 역사가로서 의심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은 바로 소설 작가로서의 그의 탁월성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모순 없고 대단히 흥미 있는 인물이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꾸며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플라톤은 그를 꾸며 낼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사실로 꾸며 했는지 어떤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소크라테스의 운명은? 소크라테스는 한번은 장군이 되기를 지망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다. 그리하여 그를 설복하여 그가 전쟁하는 기술을 아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따라서, 그 청년은 돌아가서 전술에 관한 간단한 과정을 끝마치고 다시 소크라테스에게 돌아왔다. 소크라테스는 그를 풍자적으로 약간 칭찬하고 나서 다시 또 다른 종류의 교육을 받도록 돌려보냈다. 또 다른 한 청년에게는 경제의 원리를 배우도록 하였다. 그는 같은 종류의 많은 계획을, 육군장관을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실시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비난한 악을 제거하기보다는 독약으로 그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편리하다고 결정되었다.
소크라테스 시절의 주변 상황 소크라테스가 30인 폭군과 충돌했을 때 이들 가운데 거두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의 문하에서 배운 일이 있고, 따라서 그가 하는 말에 관하여 알고 있었으므로, 소크라테스에게 계속 청년들을 가르치는 일을 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의 구두장이·목수·구리 세공장이나 가르치는 좋을 것이다. 당신이 이들에게 가르친 바 교훈을 생각할 때, 그들은 지금쯤은 이미 발 밑에 충분히 짓밟혔을 것이다." 이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끝에 스파르타 사람들이 설립한 과두정부의 짧은 기간 동안의 일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아테네는 민주주의적이었고, 장군들까지도 선거를 하든지 제비를 뽑든지 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크세노폰의 이해 크세노폰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사실이 아닌 것에 관하여 생각할 만한 두뇌가 없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논의라고는 할 수 없다. 현명한 사람이 말한 것에 관한 어리석은 사람의 보고는 결코 정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무의식적으로도 자기 귀에 들린 것을 자기가 이해하는대로 고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친구가 나에 관해 보고하여 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철학자들 가운데 나의 가장 과격한 적대자가 나에 관하여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세노폰이 말하는 바가 철학의 난제를 해명하고 있든, 또는 소크라테스가 부당하게 정죄된 것을 증명하고 있든, 그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변명 비판 크세노폰으로부터 고찰해 보자. 그는 군인이었고, 비상하게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견해는 대체로 보수적이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불경하며 청년들을 타락시킨다고 비난받는 것을 대단히 괴로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대단히 경건하고 청년들도 그에게서 아주 건전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결코 파괴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침착하며 대단히 평범한 것이었던 것 같다. 크세노폰의 이 변호는 지나쳐서, 소크라테스의 적대자들 입장은 전혀 설명치 않고 있다. 버넷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변명은 너무 성공적이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크세노폰이 변명하는 인물 그대로라면 그는 결코 사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연구의 어려운 점 소크라테스Socrates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역사적으로 어뗜 사람에 대한 많은 일들이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연구의 경우, 문제는 자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그 자료 내용의 불확실성에 있다. 그는 아테네의 한 시민이었고, 그리 많지 않은 재산으로 살면새 대부분의 시간을 토론으로 보내며, 청년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그가 가르친 것은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고 사형판결을 받아 기원전 399년, 약 70세의 나이로 사형집행을 받은 것도 확실한 일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구름The Clouds』에서 풍자한 것을 보아도, 그는 아테네에서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상에 말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