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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피타고라스16

피타고라스 시대 사모스의 폭군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피타고라스의 시대에 사모스는 폴리크라테스Polycrates라는 폭군이 다스리고 있었다. 폴리크라테스는 본래 한 노숙한 악한이었으며, 거대한 부를 이루었고, 거대한 해군을 가지고 있었다. 사모스는 밀레투스와 상업상의 적수였다. 사모스의 상인들은 멀리 스페인의 타르테수스Tartessus까지 진출했는데, 그곳은 광산으로 유명했다. 폴리크라테스는 기원전 535년경에 사모스의 전제군주가 되었고, 기원전 515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도덕적 양심의 가책을 별로 받지 않고, 그의 폭군정치에 협력하여 오던 두 형제를 제거해 버렸으며, 또 그의 해군을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해적 행위를 하였다. 그는 밀레투스가 최근에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한 것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었다. 페르시아가 더 이상 서쪽으로 진출해 오는 것을 막기 위.. 2015. 4. 15.
피타고라스Phythagoras가 철학과 수학에 끼친 영향 고대, 현대를 통한 피타고라스Phythagoras의 영향을 고찰하려는 것이 이 장의 과제이다. 피타고라스는 현명했든 현명치 못했든 간에, 지적으로 볼 때 이제까지 생존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수학의 연역적 논증이 시작된 것도 그로부터였고, 또 특수한 형태의 신비주의도 그에게 밀접하게 관련된다. 철학에 끼친 수학의 영향도 그의 시대 이후로 심각한 것이 되었고, 동시에 불행한 것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 그에게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피타고라스의 생애에 관하여 알려진 바가 대단히 적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사모스Samos섬 태생이고, 기원전 532년경에 활동한 사람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는 므네사르코스Mnesarchos라고 하.. 2015. 4. 11.
피타고라스의 신비주의 단체 - 콘퍼드의 『종교에서 철학으로』의 내용 중심 콘퍼드Cornford는 그의 『종교에서 철학으로』에서 말하기를, 자기 생각으로는 “피타고라스 학파는 과학적 경향과 대립되는 신비적 전통의 주류를 대표하고 있다.” 한다. 그는 파르메니데스를 '논리학의 발견자'라고 불렀는데, 그를 '피타고라스 철학의 소생'이라고 보았고, 또 “플라톤 자신도 그의 영감의 주요 근원을 이탈리아 철학에서 얻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피타고라스 학파는 오르페우스 종교에 있어서 개혁운동이었고, 또 오르페우스 종교는 디오니소스 숭배에 있어서 개혁운동이었다고 한다. 합리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의 대립은 역사 전편을 통하여 언제나 존재하여 온 것인데, 이 대립은 그리스 사람들에 있어서는 먼저 올림포스 신들과 기타 인류학자의 연구대상이 되는 원시신앙에 가까운 비문명적인 신들과의.. 2015. 3. 26.
피타고라스가 세운 종교결사 단체 크로토네에서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의 결사結死를 창설하였다. 이 결사는 일시 동안 그 도시에서 영향을 많이 끼쳤다. 그러나 마침내 시민들은 그를 반대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역시 남 이탈리아에 있는 메타폰티온Metapontion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사망했다. 그는 죽자마자 곧 신화적 인물이 되었고, 기적이나 마력 등을 일으켰던 사람으로 추앙되었다. 그러나 그는 또 수학 학파의 창시자였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전연 반대되는 전통이 그에 관한 기억으로 주장되고 있다. 어느 것이 참인지 분간하기가 용이하지는 않다. 피타고라스는 역사상에서 가장 흥미 있는 인물인 동시에, 또 가장 알기 어려운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에 관한 전통이 이미 진리와 허위의 풀 수 없는 혼합물일 뿐만 아니라. 가장 가식이 없.. 201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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