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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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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당시 호머나 헤시오도스의 책이 허락되지 않은 이유 신중·예의·용기 등이 교육을 통해 함양되는 주요 목표인 것 같다. 대단히 어릴 때부터 접촉하는 문학작품이나, 음악 등을 엄격히 검열하여 허락된 것만 읽고 듣고 할 수 있다. 어머니나 유모들도 그들의 자녀들에게 다만 허락된 이야기만을 할 수가 있다. 호머Homer나 헤시오도스Hesiod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로, 그 작품에 보면 신들이 때로는 교육상 좋지 못하게 행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악이란 신들에게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고 교육 받아야 한다. 신은 모든 것의 창조자는 아니고, 다만 선한 것들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호머나 헤시오도스에 보면, 독자로 하여금 죽음을 무서워하게 만드는 점이 많다. 그러나 교육에 있어서는 청년들로 하여금 전쟁에서 기꺼이 죽을 수 있도록..
생명 위협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 만일 소크라테스에게 이제까지 해온 바와 같은 사색하는 일을 멈추라는 조건으로 자기의 생명이 걸려 있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이여, 나는 제군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제군들에게보다 신에게 복종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생명과 힘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철학을 실행하며 가르치기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내가 만나는 사람을 권하여 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신의 명령이란 것을 제군은 생각해야 한다. 내가 믿기에는 이제까지 신에 대한 나의 봉사보다 더 큰 선善이 이 나라에 일어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물의 실체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는 형상 질료가 어떤 일정한 사물이 되는 것은 형상 때문이며, 또 이것이 그 사물의 실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하는 것이 평이한 상식같이 보인다. 즉, 한 ‘사물’은 한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한계가 곧 형상을 이루고 있다. 가령 한 그릇의 물을 생각하여 보자. 물의 어느 부분도 한 그릇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나머지 부분과 구분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한 ‘사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이 어느 부분도 동질적인 다른 부분에서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조각상은 한 ‘사물’이다. 그리고 그 조각상의 재료인 대리석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본래 찍혀 나온 그 큰 덩어리, 즉 돌산의 내용물로 있을 때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자연히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
플라톤 시대의 교육 영역은 음악과 체육 제일 먼저 고찰되어야 할 일은 교육이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음악music과 체육gymnastics이다. 이 둘 모두 오늘날에 가지는 의미보다는 더 넓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음악’이라 할 때 시적 정서Muses의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체육’이라고 할 때는 우리가 소위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좀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교양은 영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의미의 ‘신사gentlemen’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다. 사실은 영국에서 그와 같은 의미로 신사란 말을 사용하게 된 것도 플라톤의 영향이 큰 것이다. 플라톤 시대의 아테네는 어떤 점에 있어서 19세기의 영국과 유사한 점이 있다. 양자 모두 귀족계급은 부와 동시에 사회적 특권을 즐기고 있었으나, 정권을 독점하고 있지는..
소크라테스 철학자로서의 사명을 감당 『변명』의 나머지 부분은 본질적으로 그 어조가 종교적이다. 그는 군인이었다. 그 때 그는 명령받은 대로 자기 직책을 지켰다. 이제 “신이 나로 하여금 나 자신과 또 다른 사람을 탐구해야 할 철학자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명한다” 그리하여 전쟁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제 자기의 직책을 떠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더 큰 선이라는 것을 반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의 구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있어서 문제되는 점은 ‘형상形相form’과 ‘질료質料matter’의 구별이다. ‘형상’과 대조되는 ‘질료’는 ‘정신’과 대조되는 ‘물질’과 다르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형상과 질료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상식적 기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보편 개념의 경우 이상으로 플라톤적 변형이 아주 중요하다. 먼저 대리석 조각상으로부터 고찰해 보자. 여기서 대리석은 질료이고, 조각가가 빚어 낸 그 조각상의 모습은 형상이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를 인용한다면, 어떤 사람이 동銅으로 구球를 만들었다고 할 때 그 동은 질료이고, 구형球形은 형상이다. 또, 잔잔한 바다의 경우에 있어서 물은 질료이고, 잔잔함은 형상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단순하다.
플라톤의 수호자 계급에 대한소 소고 플라톤이 본 바와 같이,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수호자들로 하여금 입법자의 의도를 수행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제안을 한다. 교육적·생물학적·종교적인 여러 계획을 제안한다. 이런 계획을 다른 계급들에게도 어느 정도까지 적용시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군인계급에게 적용되기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체로 플라톤은 주로 수호자 계급만을 문제삼고 있고, 이 수호자 계급은 이전 파라과이Paraguay의 예수회Jesuit파나 1870년까지 교회국가에 있던 사제 계급이나, 오늘날 러시아의 공산당과도 같은 특수 계급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무신론자라는 멜레투스의 고발 기소문에는,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다른 신들을 도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멜레투스는 소크라테스를 완전한 무신론자라고 한다. 그리고 첨부하여, “그는 태양은 돌이며, 달은 흙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대답하기를, 멜레투스는 아낙사고라스를 고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낙스고라스의 견해는 극장에서 한 드라크마drachma(그리스 화폐 단위)로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서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물론 완전한 무신론자라는 이 새로운 비난은 기소 내용과도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서, 더 일반적 고찰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