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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밀레투스 학파

탈레스 시절 밀레투스Miletus의 시대적 배경

어느 철학사나 제일 처음에 탈레스Thales로부터 시작한다. 탈레스는 만물이 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철학사를 펼치는 초심자에게 용기를 잃게 한다. 철학의 교과과정이 응당 요구하게 될 철학의 심오함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 그는 철학자로서보다 과학자로서 오히려 존중해야 할 충분한 이야가 있는 것이다.

 

탈레스는 소아시아의 밀레투스Miletus 사람이다. 밀레투스는 번영하는 상업도시였는데, 다수의 노예계급이 있었고 자유민 사이에서도 부호들과 빈곤한 사람들 사이에 심한 계급투쟁이 이었다. “밀레투스에서는 처음에는 인민들이 승리를 거두었고, 귀족들의 처자를 학살했다. 그러나 후에는 귀족계급이 승리를 하여 적대자들을 산채로 불태워, 도시의 광장에는 산 사람의 타는 불로 환했다.” 탈레스 때는 소아시아의 어느 그리스 도시에서도 다 이와 마찬가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밀레투스는 이오니아Ionia의 다른 상업도시들과 같이 기원전 7세기, 6세기 사이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발전을 하였다. 처음에는 정권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귀족계급에게 속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차츰 상인들인 금권계급과 대치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순차로 민주당의 지지를 받아서 정권을 잡게 된 폭군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리디아Lydia 왕국은 그리스 해변 여러 도시의 동쪽에 있었다. 그러나 니네베Nineveh가 함락되기(기원전 612)까지는 이 여러 도시들과 우호적으로 지내왔다. 하지만, 니네베의 함락은 디디아가 서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그러나 밀레투스는 언제나 리디아와 우호적으로 지낼 수가 있었다. 특히, 기원전 546년에 키루스에게 정복당하게 된 리디아의 마지막 왕인 크로이소스Croesus와는 우호적으로 지냈던 것이다.

 

이집트와도 또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집트 왕은 그리스 용병들에게 의존하고 있었고, 몇몇 도시들을 그리스와 통상하기 위해 개방하고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집트로 이민하게 된 것은 밀레투스 사람들의 주둔병이 점령하고, 한 요새를 만들었을 때였다.

 

기원전 610~560년 사이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식민지는 다프네Daphnae였다.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왕을 피하여 예레미야Jeremiah나 기타 많은 유태 사람들이 쫓겨 온 곳도 여기였다.(예레미야43:5)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분명히 그리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유태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예레미야는 이 회의적인 이오니아 사람들에 대해서 공포심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느꼈으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