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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의 절대화 경향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소모적인 학슬 논쟁이나 명분과 형식에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게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戰亂을 겪고서 사회 전반에 걸쳐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일단의 개혁을 주장하는 학문적 경향이 대두하였다. 이른바 '실학實學'으로 불리는 이 학문적 경향은 비록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성리학과는 구별되는 세계관과 인간관, 도덕 윤리관 등을 제시하였다.
실학은 유교 본래의 실재성 중시 태도를 표방하였다. 학문적으로 청淸나라에서 유입된 서양의 자연 과학과 종교 사상을 수용하고, 성리학과 성격이 다른 양명학과 고증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학문 방법에 있어서는 박학博學을 중시하는 백과사전식 방법론, 원시 유학의 실제성 추구 정신의 회복을 위한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학문 추구, 그리고 고증학 방법론의 채택 등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학문 방법론의 전환을 통해 경세치용, 이용후생 1, 실사구시 2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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