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서양 사상 조각273

카톨릭의 신앙의 힘에 의한 세계 통일 러셀은 세계통일 방법으로서 역사상에 두 가지 방법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힘에 의한 통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념에 의한 통일이라고 하였다. 전자는 로마 제국의 세계통일의 경우이고, 후자는 카톨릭 교회의 신앙의 힘에 의한 세계통일의 경우일 것이다. 또, 그는 오늘날 세계는 통일로 진보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은 이념에 의한 방법이 아니라, 순수한 힘에 의한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카톨릭 교회의 이념적 세계통일의 내용을 이루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다시금 주의해야 할 때가 왔다고 한다. 교권 확립에 필요한 교회정치의 원조인 성 암브로시우스, 수도원 제도를 낳았다고 할 수 있는 성제롬, 카톨록 교회의 신학을 확립했다고 할 수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제로 카톨릭 교회를 .. 2015. 3. 23.
그리스 문명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러셀의 철학적 견해 고대철학사의 특질은 자연철학자들에 대한 평가를 높이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지위는 낮추는 일, 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처해 있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과 그들의 긴밀한 관련성을 해명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다른 책에서도 다소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러셀과 같이 철두철미하게 그 입장을 관철시켜 철학자들의 사상을 분석하고 있는 책은 드물다. 자연철학자들을 높이 평가하는 일과,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낮게 평가하려는 일은 동일한 입장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은 철학의 방법으로서 플로톤식의 대화적방법으로는 새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왜냐 하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후세의 철학 발전 방향에 좋지.. 2015. 3. 23.
소피스트의 거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체계는 5세기 하반기에 들어가 회의주의 운동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회의주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소피스트의 거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 '소피스트Sophist'란 이름은 본래 나쁜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략 오늘날의 '교수敎授'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뜻을 가졌었다. 소피스트는 청년들에게 실제생활에 유용한 것들을 가르쳤다. 그 시대에는 아직 공적인 교육기관이 없었으므로, 소피스트들은 개인적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 또는 그 부모가 자격을 갖춘 사람만을 가르쳤다. 이로부터 소피스트들은 자연히 어떤 계급적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시대의 정치적 환경이 더욱 그러하게 만들었다. 아테네에서나 다른 여러 도시에서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옛날.. 2015. 3. 21.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이념은 레우키포스로부터 오랫동안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은 아테네에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버넷은 말하기를,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에 관하여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 하면, 아리스토텔레스도 또한 북방으로터 온 이오니아 사람이었다.”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에서 데모크리토스에 관하여 언급한 곳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는 전하기를,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를 대한히 싫어해서 데모크리토스의 책을 전부 불태워 버리기를 원했다. 히스Heath는 데모크리토스를 수학자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공통되는 철학의 기본적인 이념은 레우키포스에 기인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구별해 내는 일은 용이한 일이.. 2015. 3. 2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