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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40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의 궁극 목적과 중용의 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이라고 보고, 이성의 기능을 남김없이 발휘할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성적 자아실현이 곧 행복이고, 인간은 덕이 있는 행동을 끊임없이 실천하여 덕을 쌓아갈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도하거나 부족하지도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용기는 만용과 비겁함의 중용이고, 절제는 방탕함과 무감각의 중용이며, 긍지는 오만과 비굴의 중용이라는 것이다. 2016. 9. 30.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에 대한 생각 - 플라톤과의 차이 형상이 실체이며, 그 형상이 관여하고 있는 질료와도 독립되어 존재한다는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대하는 그 이론에 배치하게 하는 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을 보편개념과 전연 다른 어떤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보편개념과 형상 사이에는 많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형상은 질료보다 더 실재적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은 이데아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한 사상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형이상학에 준 변형이란 것은,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적은 것 같다. 2016. 9. 21.
아리스토텔레스 생애에 대한 간단 설명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북부에 위치한 칼키디아 반도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아민타스 3세의 주치의였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케도니아 왕가와 친분이 깊었다. 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경력을 쌓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설립한 철학 학파를 형성하는 데도 힘을 얻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서기전 384~서기전 322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던 중 플라톤과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에서 20년간 철학 연구에 몰두했다. 한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 대왕의 교사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에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 리세움Lyceum이라는 학교를 설립하고,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2016. 9. 14.
화를 내는 것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분노와 관련해서도 지나침과 모자람과 중용이 있다. 이것들은 적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인 사람을 온화하다고 부르므로 그 중용을 ‘온화’로 부르기로 하자. 양 끝에 있는 사람들 중 지나친 사람은 ‘성마른 사람(화를 잘 내는 사람)’으로, 그 악덕은 ‘성마름’으로 하지.또한, 부족한 사람을 ‘화낼 줄 모르는 사람’, 그 모자람을 ‘화낼 줄 모름’이라고 하자. 마땅히 화를 낼 만한 일에 대해, 마땅히 화룰 낼 만한 사람에게, 마땅한 방식으로, 마땅한 때에, 마땅한 시간동안 화를 내는 사람은 칭찬을 받는다. 그렇다면 온화가 칭찬을 받는 것인 한, 이런 사람이 온화한 사람인 것이다. 온화한 사람은 동요가 없는 사람이며, 또 감정에 휘들리지 않고 이성이 명령한 것처럼 그렇게, 화를 낼 만한 대상에 대.. 201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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