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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40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에 대한 형이상함적 관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形而上學을 설명하는 데 있어 어느 점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좋은 출발점은 그의 이데아idea론에 대한 비판과, 그 대신에 제기한 보편개념普遍槪念universals에 관한 학설일 것이다. 그는 이데아론에 반대하여 몇 가지의 대단히 훌륭한 논증을 제기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이미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 에서 다루었던 것이다. 가장 강한 논증은 '제 3인간the third man'에 관한 논의이다. 만일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이데아의 사람을 모방해서만 된다고 하면, 이 사람과 그 모방한 이데아의 사람에게 다 공통된 이데아의 사람이 또 하나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소크라테스는 인간인 동시에 동물이다. 그러면 그 .. 2016. 5. 25.
알렉산드의 사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처신 기원전 335년에서부터 323년까지(알렉산드는 이 후년에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가 학원學園을 세우고, 또 그의 책 대부분을 쓴 것은 이 12년 동안의 일이었다. 알렉산드가 죽자 아테네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먼저 알렉산드의 친구들에게 공격해 왔다. 그 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신에 대한 불경죄로 고소당하자,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벌을 피해 도망쳤다. 그는 그 다음해인 기원전 322년에 죽었다. 2016. 5. 7.
알렉산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미친 영향은 없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로부터 받은 영향도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관해 도시국가 시대는 지나갔고, 대제국大帝國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지막까지도 알렉산더에 대해 '철학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게으르고 머리가 굳은 녀석'이라고 보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대체로 보아, 이 위대한 두 사람은 서로의 접촉을 통해 결국 아무 열매도 얻지 못했고, 마치 그들은 서로 전연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016. 4. 28.
알렉산더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에 대한 고찰 나로서도 알렉산더의 성격에 관하여 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으나, 그의 업적은 한없이 중요한 것이었고, 또 대단히 유익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없었다라면 그리스 문명의 전통 전체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끼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에 관해서는 가장 그럴 듯하게 생각되는 것을 자유롭게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알렉산더에게 끼친 영향은 전혀 없었다고 보겠다. 알렉산더는 야심이 많은 정열적인 소년이었고, 그의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생각건대, 학업에 대해서도 인내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국가에는 1만 명 이상의 시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또 중용中庸사상The doctrine of the golden mean을 가르쳤다. 그.. 2016.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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