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서양 사상 조각/아리스토텔레스22 사물에 있어서 형상은 본질이며 실체 어떤 사물에 있어서 형상은 그 본질이며, 제 1차적인 실체이다. 보편 개념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나, 형상은 실체적이다. 어떤 사람이 놋쇠로 구球를 만든다 하자. 그 때 그 질료와 형상은 이미 존재한 것이며, 그 사람이 하는 일이란 이 질료와 형상을 종합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이 사람이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은 그 사람이 질료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다 질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사물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질료를 가지지 않는다. 영원한 사물들 중에서도 공간 속에서 운동할 수 있는 사물들은 질료를 가진다. 사물들은 형상을 획득함으로써 그 현실성現實性actuality이 증가된다. 형상을 가지지 않는 질료는 다만 가능성potentiality에 불과하다. 2016. 9. 9.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대한 인식과 설명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한 가지 새로운 진술을 다룰 단계에 도달했는데, 이 문제는 얼핏 보면 어려운 문제같이 보인다. 그것은 영혼의 문제인데, 그는 말하기를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형상’이라고 하지만 ‘모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후에 다시 한 번 그가 어떤 의미에서 영혼을 육체의 형상이라고 했는가의 문제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지금은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있어서는 영혼이 육체로 하여금 한 개별적인 인간이 되게 하고, 또 목적의 통일성을 주며, 우리가 유기체有機體organism라는 말과 관련시키고 있는 그런 성품을 육체에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눈의 목적은 보는 것이다. 그러나 눈은 육체로부터 유리遊離되면 볼 수가 없다. 사실상 보.. 2016. 8. 31. 사물의 실체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는 형상 질료가 어떤 일정한 사물이 되는 것은 형상 때문이며, 또 이것이 그 사물의 실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하는 것이 평이한 상식같이 보인다. 즉, 한 ‘사물’은 한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한계가 곧 형상을 이루고 있다. 가령 한 그릇의 물을 생각하여 보자. 물의 어느 부분도 한 그릇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나머지 부분과 구분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한 ‘사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이 어느 부분도 동질적인 다른 부분에서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조각상은 한 ‘사물’이다. 그리고 그 조각상의 재료인 대리석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본래 찍혀 나온 그 큰 덩어리, 즉 돌산의 내용물로 있을 때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우리는 자연히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 2016. 8. 19.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의 구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있어서 문제되는 점은 ‘형상形相form’과 ‘질료質料matter’의 구별이다. ‘형상’과 대조되는 ‘질료’는 ‘정신’과 대조되는 ‘물질’과 다르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 형상과 질료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상식적 기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보편 개념의 경우 이상으로 플라톤적 변형이 아주 중요하다. 먼저 대리석 조각상으로부터 고찰해 보자. 여기서 대리석은 질료이고, 조각가가 빚어 낸 그 조각상의 모습은 형상이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를 인용한다면, 어떤 사람이 동銅으로 구球를 만들었다고 할 때 그 동은 질료이고, 구형球形은 형상이다. 또, 잔잔한 바다의 경우에 있어서 물은 질료이고, 잔잔함은 형상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단순하다. 2016. 8. 10. 이전 1 2 3 4 5 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