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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 종교에 관한 견해 벨로크Beloch는 「그리스 역사」에서 오르페우스 종교에 관하여 설명한 후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그러나 그리스 민족은 너무나 젊은 활력으로 충만하였고, 이 세계를 부인하고 실재의 생을 피안彼岸에 두는 한 가지 신앙만을 무조건 받아 들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오르페우스 종교는 비교적 좁은 범위의 입교자入敎者들 사이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테네와 같이 신비종교의 의식을 국가제전에까지 도입하여 법적 보호 밑에 두게까지 된 사회에서조차 국가종교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이런 이념들이- 완전히 다른 신학의 옷을 입고 나타나 그리스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기까지 완전히 천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지나친 견해인 것 같다. 특히, 엘레우시스 신비종교에 관해서는 더욱.. 2016. 3. 8.
무지로부터의 논증에서 오는 추론 오류 어떤 주장이 거짓임을 밝힐 수 없으면 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오류이다. 예를 들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이 유죄가 아닌 것을 증명해 보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유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2016. 3. 7.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 토마스 모어와 마르크스·엥겔스 사회주의 사상으로는 사유 재산권의 폐해를 지적하고 공동체 생활을 추구한 공상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엥겔스의 사회주의 등을 들 수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산업 사회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것을 유토피아의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사회의 원리를 구상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들의 구상을 구체적인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공상적 수준에 머물렀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렸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하였으며, 엥겔스와 함께 1847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 투쟁으로 자본주의는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 계급 없는.. 2016. 3. 6.
그리스 사람들의 양면적 특질 그리스 사람 일반의 특질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상의 설명만 가지고서는 역시 그리스 사람의 특질을 '침참성'에 두려는 견해와 마찬가지로 일면적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그리스에는 두 가지 경향이 다 내포되어 있다. 한편에는 정열적이요, 신비적이요, 내세적인 경향을, 또 한편으로는 명랑하고 경험적이요, 합리적이요, 또 잡다한 사실을 알기를 즐거워하였다. 헤로도토스는 이 후자의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 또, 초기의 이오니아의 철학자들도 그러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어느 정도까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2016.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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