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서양 사상 조각/들어가기 전에38 무정부주의적 기류와 감성의 숭배 철학에서의 주관성이 일단 해방되자, 그것이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까지 어느 제한 속에서 구속될 수가 없었다. 도덕에 있어 프로테스탄트의 개인 양식에 대한 강조도 그 본질은 무정부적이었다. 반면에, 관습이나 풍습이란 것도 뮌스터의 경우와 같은 우연적인 폭발을 제외하면 너무나 강한 것이어서, 윤리에서의 개인주의의 제자들까지도 전통적 덕행을 계속 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안한 균형이었다. 결국, 18세기의 '감성' 숭배는 이 불안한 균형을 깨뜨려 버렸다. 행위가 그 결과 여하로, 또는 어떤 도덕률과의 부합 여부에 따라 가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고무하는 정서 때문에 찬양을 받았다. 이와 같은 태도는 칼라일이나 니체에서와 같은 영웅숭배로 발전해 갔고, 바이런에서와 같은 어떤 .. 2016. 1. 26. 정치에서의 무정부주의와 철학에서의 주권주의 정치에서의 무정부주의는 철학에서의 주권주의를 언제나 동반한다. 이미 루터의 생존시에 환영받지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한 제자들이 재세례파再洗禮派Anabaptism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이 교파는 한때 뮌스터Minster 시를 지배하기도 했다. 재세례파는 모든 법률을 배척했다. 왜냐 하면, 선인은 순간순간 성신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어떤 일정한 형식에 매일 수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전제로부터 그들은 공산주의와 성적 난혼주의亂婚主義로까지 발전해 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영웅적인 저항 끝에 근절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교리는 그 약화된 형태로 네덜란드·영국·미국 등으로 퍼져 갔다. 퀘이커교Quakerism는 역사적으로 볼 때 여기서 온 것이다. 19세기의 종교와는 아무 관련성도 없으나 더 격렬한 .. 2016. 1. 20. 현대 철학의 출발은 데카르트로부터 현대 철학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근본적 확실성은 자기 자신의 존재와 사유의 사실이었다. 외계外界는 여기서부터 추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버클리·칸트·피히테로 이어지는 일련의 발전의 첫 단계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다 자아Ego의 발산물에 불과했다. 이것은 불건전하다. 그리하여 철학은 이 극단으로부터 일상적인 상식의 세계로 피해 나오려고 계속적으로 노력해 왔던 것이다. 2016. 1. 14. 종교개혁이 미친 철학에의 영향 교회보다는 성경중심의 변화는 중대한 결과를 야기시켰다. 진리는 이미 협의체에 의해 확인될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내적 명상에 의해서만 확인되어야 하였다. 이 결과는 이미 카톨릭의 정통적 구조에는 들어맞기 어렵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주의도 단 하나만 있을 수는 없었고, 많은 교파들이 생겨났다. 스콜라 철학에 대항하는 철학도 하나만은 아니었고, 철학자의 수만큼 철학의 수도 생겨났다. 13세기에서와 같이 교황에 대항하는 황제도 하나뿐만 아니었고, 많은 이교의 왕들이 대립했다. 문학에서나 사상에서나 모두 마찬가지로, 점차 더욱 심화해 가는 주권주의를 일으켰고, 이것은 처음에는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건전한 해방을 가져왔으나, 점차로 사회적 건전성과는 적대되는 개인적 고립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2016. 1. 8. 이전 1 2 3 4 5 ··· 1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