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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사상/동양 윤리사상62

"나라 망하면 백성도 망한다." - 74세에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 왕조의 명운이 기울던 조선 시대 말, 대학자이자 애국애민 정신이 드높았던 최익현은, 74세의 노인임에도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적지 쓰시마 섬으로 끌려가 단식 끝에 순절하였다. 일화에 의하면, 최익현의 신발 속에는 항상 흙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흙은 쓰시마 섬으로 끌려갈 때 몰래 가지고 간 우리나라의 흙으로 조금씩 신발에 깔아서 다닌 것은 일본의 흙은 밟지 않겠다는 무서은 결의를 보여 준다. 최익현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독립 정신과 살신성인하는 마음으로 나라에 충정을 다하는 높은 뜻을 실천하였다. 그를 본 일본의 헌병 소령은 "한국에 이런 사람이 50명이라도 있으면 독립이 공연한 말 이상의 무엇인가를 의미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쓰시마 섬으로 끌려갈 당시의 모습으로, 올곧은.. 2016. 5. 31.
19세기 말의 위정척사와 개화 사상 19세기 말 조선 사회는 서구 열강의 침투와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전통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윤리 사상을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처해 나가려고 등장한 것이 바로 위정척사와 개화사상이다. 19세기 중엽에 접어들어 서구의 문화가 밀물처럼 들어오자, 이항로와 기정진을 비롯한 위정척사를 주장한 학자들은 유학적 윤리 의식의 붕괴를 깊이 우려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서양의 종교와 문물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척양斥洋·척왜斥倭의 강력한 의리론을 주장하였다. 위정척사 사상은 서양과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침략이 노골화하면서 반외세적 민족주의 형태를 갖추었고, 일본의 침략과 굴욕적인 외교에 반대하는 상소 운동을 벌였으며, 점차 반일 의병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반면에, 서구 문화에 .. 2016. 5. 23.
근대 한국 유교 사상의 다양한 경향 - 강화학파 근대에 접어들어 한국 유교 사상은 다양한 학문적 경향이 지속하는 가운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학문적 경향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 주력하였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 흐름에 밀려 표면화하지 않았던 양명학적 학풍을 계승한 사상이다. 이른바 '강화학파江華學派'라고 불리는 이들은, 정제두鄭齊斗(1649~1736)가 은거한 강화 지역에서 그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양명학을 수용하면서도 특정한 문호를 세우지 않았고, 도교와 불교까지 수용하였으며, 국학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자기 내면에 충실하라고 주장하면서, 참된 자아의 각성과 생활 속의 실천을.. 2016. 5. 14.
정약용의 성기호설性嗜好說 -맹자요의孟子要義 정약용은 인간의 성性을 어떤 구체적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기호로 파악한다. 그가 말한 바로는 기호에는 영지靈知의 기호와 형구形軀의 기호가 있다. 영지의 기호란 우리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미워하며 덕행을 좋아하고 더러움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것이말로 인간만이 가지는 본성이며, 하늘이 명한 성품이다. 형구의 기호란 우리의 눈이 좋은 빛깔을 좋아하고 입이 맛있는 요리를 즐기며,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 것읍 좋아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것은 동몰도 가지는 품성이다. - 정약용, "맹자요의孟子要義" - 2016.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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