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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사상/동양 윤리사상62

한·중·일 삼국 유교 사상의 지역적 특징 한·중·일 삼국을 비교해 보면 유교 사상의 전개와 발전은 학국과 중국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일본은 여러 면에서 달랐다. 사회적 역할 측면에서 중국과 한국의 유교 사상은 주류 문화로서 교육과 통치 이념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반면에, 일본의 유교 사상은 신도와 불교의 영향으로 주도적 위치에 오르지 못하였다. 일본에서는 줄곧 불교의 영향이 강했고, 에도 시대에 들어서야 주자학이 관학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주자학은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불교를 비판할 때 계속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리학 내부의 다른 학파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삼국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주자학이 형성된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심학心學이 용인되었으며, 결국에는 양명학이 주도적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 양명학은 .. 2016. 1. 21.
주자의 성리학 - 성즉리, 본성이 곧 이치 주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이치[理]라고 주장하여 본성이 곧 이치[性卽理]라고 하였다. 주자는 이 본성을 선한 것이라고 보아 '본래 그러한 성품[本然之性]'이라고 하였다. 그는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천리天理에 둠으로써 도덕 행위의 근거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만물을 이치와 기가 합하여 형성되므로, 우리의 본성에도 기에서 유래한 기질의 성[氣質之性]이 있다. 기질로부터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은 감정[情]과 욕구[慾]이고, 이것이 지나치면 악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주자는 올바른 사람이 되려면 기질을 순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앎을 늘려 나가며[格物致知], 양심을 보존하여 본성을 함양하고 나쁜 마음이 스며들지 않도록 잘 살.. 2015. 12. 16.
유교 사상의 전개 - 진나라 이후 송대까지 전쟁과 분열을 겪으면서도 사상적으로는 자유를 누렸던 춘추 전국 시대는 진秦나라가 통일 제국을 성립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진나라는 유가적 도덕 담론을 외면하고 법가·병가의 부국강병책을 중시하였고, 분서갱유를 일으켜 사상계의 침체를 불러왔다. 그 후 진나라를 이은 한漢나라에 이르러 다시 유학이 부활하였다. 특히 무제武帝(서기전 159~서기전 87)가 유학을 국학國學으로 삼으면서 분서갱유로 말미암아 없어진 경서의 복원이나 그 내용에 대한 주석을 주로 하는 경학과 훈고학이 발달하였다. 유학은 당대唐代에도 국학의 위치에 있었으며, 송대宋代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도가 사상과 불교 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선진 유학을 재해석하고 체계화하려고 한 것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우주 만물의 존재와 변화.. 2015. 12. 7.
법가 사상의 대표자 한비자 한비자韓非子(서기전 280? ~ 서기전 233)는 순자의 제자로서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그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영향을 받아 법가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인간은 이기적이며 간사한 지혜에 차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오직 상과 벌로써만 다스릴 수 있다."라고 주장했고, 통치의 근간을 법과 처벌[刑]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정치의 요체는 법法과 부하를 거느리는 기술[術], 세력[勢]의 확보에 있다고 보았다. 법가 사상은 진시황이 춘추 전국 시대를 끝내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를 세우는 데 영향을 끼쳤다. 201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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