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서양 사상 조각273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영혼은 원자로 되어 있고, 사유는 물리적 과정이었다. 우주에는 목적이 없고, 다만 기계적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는 원자들뿐이다. 그는 대중적 종교를 믿지 않았고, 아낙사고라스의 누스nous를 반대했다. 윤리에 있어서 그는 유쾌함cheerfulness을 생의 목표로 생각했다. 그리고 절도와 교양이 이에 대한 최상의 수단이라 하였다. 그는 격렬하고 정열적인 것을 싫어하였다. 그는 성性이란 것도 찬성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는 말하기를 성은 쾌락에 의한 의식의 혼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정이란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부녀자들에 대해서는 좋지 못하게 말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원치 않았다. 이 아이들의 교육은 철학과 상충된다는 것이었.. 2015. 10. 13. 시인들은 시간의 힘을 애통하게 여김 시인들은 그들의 사랑하는 것들을 여지없이 휩쓸어 사라지게 하는 시간의 힘을 애통하여 왔던 것이다. 청춘에 수놓은 장식을 위협하며미인의 이마에 주름살을 깊이 새기는 시간은자연의 진리의 희귀함을 양식糧食으로 하나니,머물러 서 있는 것은 모두 그의 추수의 낫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또, 이들은 모두 그들의 시는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을 것을 부언한다. 그러나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나의 구절은 희망을 품고 서 있나니,그 손이 잔인함에도 불구하고그대의 가치를 찬양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전통적인 문화적 환상에 불과하다. 2015. 10. 10.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 그리스는 다수의 작은 국가로 분할되어 있었다. 각 국가는 1개 도시와 도시 주변의 농토로써 이루어져 있었다. 문명의 정도도 그리스 세계의 부분에 따라 차이가 대단히 컸다. 그리고 다만 소수의 도시들만이 그리스 문명에 기여할 수가 있었다. 스파르타는 군사적 의미에서는 중요성을 가지나 문화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여러 가지로 언급하겠다. 코린트는 부유하고 번영된 큰 상업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이 그다지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또 유명한 아르카디아Arcadia와 같이 순전히 목가적인 촌락사회도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런 사회에 대하여 전원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옛날의 야만적인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2015. 10. 7.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 기독교는 한 가지 중요한 견해를 보급시켰다. 이 견해는 이미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고대의 일반적 정신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국가에 대한 인간의 의무보다 더 절대적이라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 - 소크라테스나 12사도the Apostles들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 대해서보다 신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견해 - 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 이후에까지 존속했다. 왜냐 하면, 초기의 기독교 황제들은 아리우스파Arians였거나 또는 아리우스 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황제들이 정통적으로 되었을 때는 이 견해도 종식을 보았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이 견해가 잠재적으로 남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후에 러시아 제국에서도, 그 기독교는 콘스탄티노플.. 2015. 10. 4.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6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