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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 조각273

사회적 결속과 개인의 자유 사회적 결속과 개인의 자유의 관계도 종교와 과학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전 시기를 통해 투쟁의 상태에 있든지 또는 불안정한 타협의 상태에 있든지 하였다. 그리스의 사회적 결속은 도시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의해 확보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도, 이미 그의 시대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도시 국가를 없애 버리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국가에 대한 정치제도의 장점만 찾고 있었다. 도시 국가에 대한 의무감이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그 구속의 정도도 변화가 크다. 스파르타에서는 오늘날의 독일(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독일)이나 러시아의 경우처럼 자유가 적었다. 아테네에서는 때때로 일어난 박해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때로는 국가의 구속에서 놀라운 자유를 가진 때도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 사상은 .. 2015. 9. 19.
아테네의 암흑 시대 이 시기의 아테네의 탁월성은 지적이었다기보다 예술적이었다. 5세기의 위대한 수학자나 철학자들 가운데 아테네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예외였으나 그는 작가는 아니었고, 다만 구두口頭의 논쟁만 하였을 뿐이다. 기원전 431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돌발, 기원전 429년의 페리클레스의 죽음은 아테네 역사의 암흑 시대를 초래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해상에서 우위를 차자하였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스파르타가 우위를 견지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 여름 동안 여러 차례 아티카Attica를 점령했다.(아테네는 제외) 그 결과 아테네는 인구가 과다하게 되었고, 게다가 역병이 심하게 만연했다. 2015. 9. 18.
절대 공간과 경험적 과학의 논리 차이 뉴턴의 절대 공간에 관한 학설은 원자론자들의 견해가 논리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학설은 비존재not-being에게 실재성을 부여하게 되는 난점에 봉착한다. 이 학설을 논리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 이 학설에 대한 주요한 반대는 절대 공간은 절대로 알려질 수 없다는것이다. 따라서, 경험적 과학에서는 절대 공간은 필연적 가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실질적인 반대는, 물리학은 이 절대 공간 없이도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원자론자들의 세계는 논리적으로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고, 또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어느 세계보다도 실제 세계에 제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15. 9. 16.
헤라클레이토스의 학설 "만물은 유전한다"에 대한 고찰 헤라클레이토스는 '신'은 '신들'에게서 구별되는 것으로서 반복하여 강조한다. "인간의 하는 일은 자혜롭지 못하다.그러나 신이 하는 일은 지혜롭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신에게 비할 때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마치 가장 아름다운 원숭이도 사람과 비교할 때는 추한 것처럼." 신은 분명히 우주적 정의正義의 화신이다. 만물이 유전flux 상태에 있다는 학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견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Theaetetus』에도 쓰인 바와 같이, 그의 제자들이 가장 강조하고 있던 의견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은 같은 첫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언제나 새 물이 여러분에게로 흘러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태양은 매일매일 새롭다." 보편적 변화에 대한 헤라.. 201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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